우 리 의 명 절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설날

01.gif 

세수(歲首)·원단(元旦)·원일(元日)·신원(新元)이라고도 하며, 근신·조심하는 날이라 해서 한문으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쓴다.

조선시대에 의정대신(議政大臣)들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箋文)과 표리(表裏:거친 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치고 정전(正殿)의 뜰로 나가 조하(朝賀)를 올렸으며, 8도에서도 관찰사 ·병사(兵使)·수사(水使)·목사(牧使)는 전문과 방물(方物)을 바쳤다. 이 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하고,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歲粧)이라고 하며 어른들을

찾아 뵙는 일을 세배라 한다. 이 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 세찬으로는 떡국[餠湯]을, 세주로는 초백주(椒栢酒)·도소주(屠蘇酒)가 나오는데, 떡국은 손님 대접에도 쓰고 제사에도 쓰므로,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또 시루떡[甑餠]을 쪄서 올려 놓고 신에게 빌기도 하고, 삭망전(朔望奠)에 올리기도 한다.

한편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또한 각 관아의 서예(胥隸:衙前과 종)와 각 영문(營門)의 교졸(校卒:장교·나졸) 등은 종이를 접어 이름을 쓴 명함을 상관이나 선생의 집에 드린다. 그러면 그 집에서는 대문 안에 옻칠한 쟁반을 놓고 이를 받아들이는데 이것을 세함(歲銜)이라고 한다.

민가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남녀의 나이가 삼재(三災)를 당한 자는 3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인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聽讖)이라 한다. 또한 나무에 금·목·수·화·토를 새겨 장기쪽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아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치는데, 이를 오행점(五行占)이라 한다.

남녀가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었다가 설날, 황혼을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친다. 속담에 나오는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곧 신고 가버린다. 그러면 그 신의 주인은 불길하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이 귀신을 두려워하여 모두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마루벽이나 뜰에 걸어 둔다. 그러면 이 야광신이 와서 이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보면 설날부터 3일 동안은 길거리에 많은 남녀들이 떠들썩하게 왕래하는데,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빛나며,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올해는 꼭 과거에 급제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생남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등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 이렇게 남이 바라는 바를 말하는 일을 덕담(德談)이라고 한다.

설날의 놀이로서는 남녀가 방 안에서 다 같이 윷놀이를 하고, 젊은 부녀자들은 널뛰기, 남자들은 연날리기를 한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수천 년 동안 민간에서 지켜 내려와서 관습화된 음력설을 말살하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예를 들면 떡방앗간을 섣달 그믐 전 1주일 동안은 못 돌리게 하였고, 설날 아침 새벽 세배 다니는 사람이 특히 흰 옷을 입었을 때는 양력설에 세배 안 가고, 또 무색옷을 안 입는다 해서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아 흰 옷에 검은 물이 얼룩지게 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하였다.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정월대보름

 

대보름날은 우리 민족의 밝음사상을 반영한 명절로 다채로운 민속이 전한다. 중국에서는 이 날을 상원(上元)이라 하는데 도교적인 명칭으로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한다. 여기에 중원인 7월 15일, 하원인 10월 15일을 합하여 삼원이라 부른다. 이 밖에도 원소절(元宵節), 원석(元夕)이라 하며, 일본에서는 소정월(小正月)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 명절로 삼고 있다.

대보름날의 각종 풍속은 전체 세시풍속 중 1/4이 넘을 정도로 풍부한데 설 풍속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이것은 정초와 대보름 명절이 우리 민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이들은 상호 유기성을 가지기 때문에 정월중에 많은 세시행사가 모여 있다. 정월에 드는 설과 대보름은 상호보완적으로 설날이 개인적 ·폐쇄적 ·수직적이고, 피붙이의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개방적 ·집단적 ·수평적 ·적극적인 마을공동체 명절로 두 관념이 교차하며 달의 생성과 소멸주기에 따라 긴장과 이완, 어둠과 밝음, 나에서 우리로 교체 ·확장되는 일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한국의 명절 중 정월 대보름의 예축의례와 상대적인 명절로 수확의례인 8월 한가위의 보름 역시 만월을 통한 풍요관념을 보여준다.

대보름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달 ·여성 ·대지의 음성원리(陰性原理)에 의한 명절로 달은 곧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하다.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온 지모신(地母神)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태종실록》에 전하는 경기도 연안부의 용갈이, 용경(龍耕)풍속이나 《동국세시기》에 전하는 홍주의 용경과 용알뜨기 민속, 영동지방의 용물달기 등은 용신(龍神)신앙이 농경의례와 밀접함을 보여준다. 줄다리기 역시 용사(龍蛇) 신앙의 한 표현이다. 따라서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동제(洞祭)를 지내고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한다. 전하는 말에는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든가 “중국 사람은 좀생이 별을 보고 농사짓고, 우리나라 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유형이 다름을 말해준다. 개인적인 기복 행사로는 보럼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 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으며, 줄다리기 ·다리밟기 ·고싸움 ·돌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보름 행사다.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한식

청명절(淸明節) 당일이나 다음날이 되는데 음력으로는 대개 2월이 되고 간혹 3월에 드는 수도 있다. 양력으로는 4월 5·6일경이며, 예로부터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일컫는다.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 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한식의 기원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개자추가 간신에게 몰려 면산(쿤山)에 숨어 있었는데 문공(文公)이 그의 충성심을 알고찾았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자, 나오게 하기 위하여 면산에 불을 놓았다. 그러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고 말았으며, 사람들은 그를 애도하여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고대에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이에 앞서 일정 기간 구화(舊火)를 일체 금한 예속(禮俗)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식날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만일 무덤이 헐었으면 잔듸를 다시 입히는데 이것을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 또 묘 둘레에 나무도 심는다. 그러나 한식이 3월에 들면 개사초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날 성묘하는 습관은 당(唐)나라 때 중국에서 시작하여 전해진 것으로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로 숭상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민속적 권위가 더욱 중시되어 조정에서는 향연을 베풀기도 하였으나 근세에는 성묘 이외의 행사는 폐지되었다. 농가에서는 이 날 농작물의 씨를 뿌린다.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단오

음력 5월 5일. 수릿날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중오(重午) ·중오(重五) ·단양(端陽) ·오월절이라고도 한다. 단오는 초오(初五)의 뜻으로 5월의 첫째 말[午]의 날을 말한다. 음력으로 5월은 오월(午月)에 해당하며 기수(奇數:홀수)의 달과 날이 같은 수로 겹치는 것을 중요시한 데서 5월 5일을 명절날로 하였다.

단오는 중국 한대(漢代)의 문헌에도 나타나는데, 엣날부터 5월은 비가 많이 오는 게절로

접어드는 달로 나쁜 병이 유행하기 쉽고, 여러 가지 액(厄)을 제거해야 하는 나쁜 달로 보아, 예방조치로서 여러 가지 미신적인 풍습이 생겨났다. 중국의 옛 풍속을 전하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따르면 단오에는 약초를 캐고, 재액을 예방하기 위하여 쑥으로 만든 인형 ·호랑이를 문에 걸었으며, 창포주 ·웅황주(雄黃酒)라는 약주를 마셨다. 약초 ·창포 ·쑥 등을 이용한 것은 강한 향기와 약성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또 전국시대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이 멱라수(쾅羅水)에 빠져 죽었다는 고사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으로 대나무통에 쌀을 넣고 소태나뭇잎으로 감아 물 속에 던지던 풍습이 변하여, 지금은 대나뭇잎으로 싸서 찐 떡을 먹는 풍습이 되었다고 한다. 또 굴원을 작은 배로 구한다는 뜻의 놀이로서 일종의 보트레이스인 용선경도(龍船競渡)가 지금까지 전한다.

  ≪강릉 단오제의 한 장면 ≫

한국의 경우, 고대 마한의 습속을 적은 《위지(魏志)》 <한전(韓傳)>에 의하면, 파종이 끝난 5월에 군중이 모여 서로 신(神)에게 제사하고 가무와 음주로 밤낮을 쉬지 않고 놀았다는 것으로 미루어,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인 5월제의 유풍으로 보기도 한다.고려가요 《동동(動動)》에는 단오를 ‘수릿날’이라 하였는데 수리란 말은 상(上) ·고(高) ·신(神) 등을 의미하며, 수릿날은 신일(神日) ·상일(上日)이란 뜻을 지닌다. 여자들은 단옷날 ‘단오비음’이라 하여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얼굴도 씻으며, 붉고 푸른 새 옷을 입고 창포뿌리를 깎아 붉은 물을 들여서 비녀를 만들어 꽂았다. 남자들은 창포뿌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는데 액을 물리치기 위해서라고 한다. 단옷날 아침 이슬이 맺힌 약쑥은 배앓이에 좋고, 산모의 약, 상처 치료에 썼다. 또 단옷날 오시(午時)에 목욕을 하면 무병(無病)한다 하여 ‘단오물맞이’를 하고 모래찜을 하였다. 이 밖에 단오 절식으로 수리취를 넣어 둥글게 절편을 만든 수리취떡[車輪餠]과 쑥떡 ·망개떡 ·약초떡 ·밀가루지짐 등을 먹었고, 그네뛰기 ·씨름 ·탈춤 ·사자춤 ·가면극 등을 즐겼다.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유두

유둣날이라고도 한다. 유두란 말은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다. 유둣날에는 맑은 개울물을 찾아가서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으며 하루를 즐긴다. 그러면 상서롭지 못한 것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유두의 풍속은 신라 때에도 있었으며 동류(東流)에 가서 머리를 감는 것은 동방은 청(靑)이요, 양기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유둣날 선비들이 술과 고기를 장만하여 계곡이나 수정(水亭)을 찾아가서 풍월을 읊으며 하루를 즐기는 것을 유두연(流頭宴)이라고 한다. 유두 무렵에는 새로운 과일이 나기 시작하므로 수박·참외 등을 따고, 국수와 떡을 만들어 사당에 올려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고 한다. 조상을 숭배하는 사상이 강한 옛날에는 새 과일이 나도 자기가 먼저 먹지 않고 조상에게 올린 다음에 먹었다.

 

유둣날의 음식으로는 유두면.수단·건단·연병 등이 있다. 유두면을 먹으면 장수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액을 쫓는다 하여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처럼 만들고 오색으로 물을 들여 3개씩 포갠 다음 색실로 꿰어 허리에 차거나 대문 위에 걸어 두는 풍습도 있었다.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칠월칠석

7월 7일을 칠석(七夕)이라 한다. 칠석 날에는 은하수에 까치와 까마귀가 오작교를 놓고, 동쪽의 견우성과 서쪽의 직녀성이 만나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느라 대체로 날이 흐리고, 비가 온다고 한다. 부녀자들은 마당에 바느질 차비와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문인들은 술잔을 교환하면서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또한 볕이 좋을 때 옷과 책을 말린다. 집집마다 우물을 퍼내어 청결히 한 다음 시루떡을 해서 우물에 두고 칠성제를 지낸다. 음식으로 밀국수, 밀전병을 하고 잉어를 재료로 음식을 만들며 오이 김치나 복숭아, 수박으로 과일 화채를 만들어 먹는다.

 

밀전병 - 밀가루를 체에 쳐서 묽게 반죽한 것에 곱게 채 썰은 호박을 넣는다. 번철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지져서 따끈할 때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밀국수- 밀 음식은 여름철 주식의 하나이다. 긴 여름해에 쌀과 보리가 동이 나면 미역국을 펄펄 끓여 부드럽고 질게 반죽한 밀가루나 메밀 가루를 떼 넣어 별미로 해먹었다.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밀가루에 생 콩가루를 섞어 끓는 물로 오래 반죽한다. 반죽한 것을 얇게 밀어 칼국수로 만들어 끓는 물에 삶아 낸다. 끓인 장국에 삶은 국수를 담고 위에 고명으로 호박 나물과 고기를 다져서 만든 섭산적, 달걀 지단채를 얹어 낸다. 국수를 삶아 헹궈서 장국에 넣은 것을 건진 국수라 하고, 장국에 넣어 끓이면 제물 국수라 한다.

 

과일 화채 - 제철에 나오는 과일로 만드는데 여름철엔 복숭아나 수박으로 화채를 만들어 먹는다. 땀을 많이 흘려 부족하기 쉬운 수분 보충과 함께 과일의 비타민을 섭취함으로써 영양을 보충해 주기도 한다.

 

복숭아 화채 - 빨간 복숭아를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고 은행잎 모양으로 얇게 절어서 꿀에 재운다. 설탕이나 꿀을 넣은 단물에 절인 복숭아를 넣고 실백을 띄워 낸다.

 

수박 화채 - 수박의 과육만 내어 한입 크기로 잘라 씨를 빼고 화채 그릇에 담고 설탕을 뿌려 낸다. 또는 수박통을 깨끗이 씻어 위를 삼분의 이 정도 도려내고, 과육을 숟가락으로 잘게 잘라서 설탕이나 꿀을 넣고 얼음을 넣어 잘 섞는다.

뚜껑을 덮어, 먹는 이들의 앞에 놓고 각각 자유로이 떠먹는 방법이 있다.

시루떡 - 칠석날 고사에 쓰던 것은 붉은팥을 얹어 찐 버무리 떡이고, 고명이나 다른 부재료를 안 쓰고, 흰 쌀가루만으로 찐 떡을 백설기라 한다. 백설기는 여름철 떡의 으뜸으로 그 맛이 매우 부드럽고 색이 눈같이 하얘서 노인과 어린이 간식으로 매우 좋다.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추석

 

이 말은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초추 ·중추 ·종추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한국 고유명절로 추석은 ‘가윗날’이라 부르는데 이는 신라 때로 거슬러 올가간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 유리이사금 조에 의하면 왕이 신라를 6부로 나누었는데 왕녀 2인이 각 부의 여자들을 통솔하여 무리를 만들고 7월 16일부터 매일 일찍 모여서 길쌈, 적마(積麻)를 늦도록 하였다.

 

8월 15일에 이르러서는 그 성과의 많고 적음을 살펴 진 쪽에서 술과 음식을 내놓아 승자를 축하하고 가무를 하며 각종 놀이를 하였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 때 부른 노래가 슬프고 아름다워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는데, 이 행사를 가배라 부른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가배의 어원은 ‘가운데’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본다. 즉 음력 8월 15일은 대표적인 우리의 만월 명절이므로 이것을 뜻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다음은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잔치를 베풀게 되므로 ‘갚는다’는 뜻에서 나왔을 것으로도 유추된다. 고려시대에 나온 노래인 《동동》에도 이 날을 가배라 적었음을 보아 이 명칭은 지속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가윗날이 신라 이래 국속으로 지속되었음은 중국에서 나온 《수서(隋書)》 동이전 신라 조에 임금이 이 날 음악을 베풀고 신하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상으로 말과 천을 내렸다고 하였으며, 《구당서(舊唐書)》 동이전에도 신라국에서는 8월 15일을 중히 여겨 음악을 베풀고 잔치를 열었으며 신하들이 활쏘기 대회를 하였다고 쓰여 있다. 또한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도 당시 산둥[山東] 근방에 살던 신라인들이 절에서 베푼 가배 명절을 즐겼음을 그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기록하였다. 신라가 6부였음은 1988년 4월 15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竹邊面) 봉평리(鳳坪里)에서 출토된 신라비석에 쓰여 있어 확인되었다. 이 비석은 524년(법흥왕 11)에 세워진 것으로 6부 중의 하나인 탁부 출신의 박사가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어 가배풍속과 관련된 6부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이구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행사를 가락국에서 나왔다고도 했는데, 이처럼 가윗날은 한국의 고유한 명절로 오래 전부터 인식되어 왔다. 이는 정월 대보름날의 예축적 의례와 서로 의미가 통하여 수확 경축적 의례라 하겠다. 따라서 지역별로 다양하고 풍성하며 다채로운 민속들이 나타난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 ·시루떡 ·인절미 ·밤단자를 시절음식으로 꼽았는데, 송편은 대표적인 추석음식이다. 전하는 말로는 송편을 예쁘게 잘 빚어야 시집을 잘 간다고 하여, 여성들은 예쁜 손자욱을 내며 반월형의 송편에 꿀 ·밤 ·깨 ·콩 등을 넣어 맛있게 쪄냈으며 이 때 솔잎을 깔아 맛으로만 먹은 것이 아니고 후각적 향기와 시각적인 멋도 즐겼다. 《농가월령가》에도 신도주(新稻酒)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 등을 이 때의 시식이라 노래했으며, 송이국 ·고지국도 영동 지방에서는 별식으로 먹는다. 이 때는 무엇보다 오곡이 풍성하므로 다양한 음식이 시절에 맞게 나온다.

 

한국의 전통 4명절인 설날 ·한식 ·중추 ·동지에는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추석 차례 또한 조상을 기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 행사이다. 호남지방에는 ‘올벼심리’라 하여 그 해 난 올벼를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는 제를 지내며 영남 지방에서도 ‘풋바심’이라 하여 채 익지 않은 곡식을 천신할 목적으로 벤다. 일부 가정에서는 새로 거둔 햅쌀을 성주단지에 새로 채워 넣으며 풍작을 감사하는 제를 지낸다.

 

속담으로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고 《열량세시기》에 언급했듯이 천고마비의 좋은 절기에 새 곡식과 햇과일이 나와 만물이 풍성하며,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전국적으로는 다양한 놀이가 전승되는데 호남 남해안 일대에서 행하는 강강술래와 전국적인 소먹이 놀이 ·소싸움 ·닭싸움 ·거북놀이 등은 농작의 풍년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으며, 의성 지방의 가마싸움도 이 때 한다. 가윗날에는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는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중로상봉(中路相逢), 즉 반보기라 한다. 속담에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고 할 정도로 추석을 전후하여 반보기가 아닌 ‘온보기’로 하루 동안 친정나들이를 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큰 기쁨이며 희망이다. 오늘날도 민족대이동이라 할 만큼 몇 천 만 명이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一家親戚) 만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린다. 중국에서도 추석날에는 달 모양의 월병(月餠)을 만들어 조상에게 바치고 달을 감상하며 시를 짓는다. 중국속담에 ‘매봉중추(每逢中秋) 배사월병(倍思月餠)’이라 하여 매번 중추날에는 더욱 월병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반달 모양 송편과 달리 보름달 모양의 월병은 이미 원(元)나라 때 만들어졌는데, 월병으로 시식을 삼고 또한 달을 감상하는 상월(賞月) 행사로 추석날을 보낸다. 이러한 풍습은 일본의 경우도 비슷한데, 동양 3국 가운데 우리 민족만이 이 날을 민족적인 대명절로 여기는 것은 한민족과 달의 명절이 유서깊음을 엿볼 수 있다.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중앙절

음력 9월 9일은 중구 또는 중양이라 한다. 옛 어른들은 홀수가 두 번 겹치면 복이 들어오는 좋은 날이라고 여겨 단오나 칠석날처럼 중양절을 명절로 삼았다.

 

중앙절의 유래

중국 어느 마을에 신통한 능력을 가진 장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장방은 어느날 환경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돌아오는 9월 9일 이 고을에 큰 재앙이 있을 것이니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주머니에 수유꽃을 넣었다가 팔에 걸고 산 꼭대기에 올라가라고 이르자 환경은 9월 9일 그렇게 하였다.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고 장방의 말대로 해가 떨어진 후에 내려와 보니 가축들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죽어 있었다한다. 그 후부터 중앙절이 되면 산에 올라가는 풍습을 지키게 되었고 또한 국화주를 마시게 되었다.

 

행 사

중양절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로 빚은 술을 마시며 즐겁게 노는 풍국(楓菊)놀이를 하면서 시를 짓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즐기는 명절이다. 이와 같이 중양절은 좋은 날 이지만 결혼식이나 잔치를 열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남이 즐길 수 있는 좋은 날에 자기집 잔치로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양절은 추석처럼 큰 명절은 아니어서 특별한 놀이를 하지는 않고 대신 음식을 가지고 산과 들을 찾아가 하루을 즐겁게 놀았는데 요즘의 가을 소풍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중양절 이후부터는 가을이 가고 계절이 바뀌므로 가을을 마지막으로 즐기는 명절이기도 하다.

 

음 식

중양절에는 국화주와 국화전 외에 화채도 만들어 먹었다. 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유자를 따다가 송송 썰어 꿀물에 타고 여기에 석류알과 잣을 동동 띄우면 맛있고 시원한 화채가 된다. 국화전은 국화를 따서 찹쌀떡을 만들어 지져 먹는데 삼짇날 진달래 꽃잎으로 만드는 화전과 같다.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동지

대설(大雪) 15일 후, 소한(小寒) 전까지의 절기로, 양력 12월 22일경이 절기의 시작일이다.음력으로는11월 중기(中氣)이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의 동지선(冬至線:南回歸線)과 황경(黃經) 270°에 도달하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을 가리킨다동양의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에서 역(曆)의 기산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동지는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가장 남쪽에 이르는 남지일(南至日)이며,태양의 남중고도가 1년 중 제일 낮아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반대로 남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제일 짧은 하지가 된다. 이때를 기하여 태양이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와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옛날에는 동지를 중요한 축제일로 삼았으며, 특히 태양신을 숭배하던 페르시아의 미드라교에서는 12월 25일을 ‘태양탄생일’로 정하여 축하하였다. 이 미드라교의 동지제가 로마로 넘어가 크게 유행하였고, 4세기경부터 현재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동지를 ‘다음해가 되는 날(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해서 크게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궁중에서는 이 날을 원단(元旦)과 함께 으뜸되는 축일로 여겨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으며,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하였다. 또 지방에 있는 관원들은 국왕에게 전문(箋文)을 올려 진하(陳賀)하였다. 민가에서는 붉은 팥으로 죽을 쑤는데 죽 속에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는다. 이 새알심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에 재기도 하고, 시절 음식으로 삼아 제사에 쓰기도 한다. 팥죽 국물은 역귀(疫鬼)를 쫓는다 하여 벽이나 문짝에 뿌리기도 한다. 한편,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 ·청장력 ·백력 등의 구분이 있었고,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또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전약(煎藥)이라 하여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관계(官桂) ·생강 ·정향(丁香) ·후추 ·꿀 등을 섞어 기름에 엉기게 하여 굳힌 후 임금에게 진상하여 별미로 들게 하였다. 그 밖에 고려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설 날  정월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칠월칠석  추석  중앙절  동지  섣달그믐

섣달그믐

제야(除夜)라고도 한다. 한 해를 마치는 날이라 하여 예로부터 궁중에서나 민가에서 여러 가지 행사와 의식을 행하였다. 그 해의 거래 관계는 이 날에 청산하며, 각 가정에서는 새해 준비와 연중(年中) 거래의 주고받는 일로 분주하고 밤중까지 빚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정(子正)이 지나면 정월 보름까지는 독촉하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날 밤 대궐 뜰에서 악귀를 쫓는 의식인 나례(儺禮)를 베풀었다. 2품 이상의 조관(朝官)은 왕을 뵙고 묵은해 문안을 드렸으며 민가에서는 사묘(祠廟)나 손위 어른들에게 묵은세배를 드렸다. 궐내(闕內)에서는 연종포(年終砲)를 놓고 화전(火箭)을 쏘고 징을 울렸으며 민가에서는 등불을 밝히고 서로 지난해를 반성하면서 밤샘하는 풍습이 있었다.묵은세배라고도 한다. 음력 섣달 그믐날을 '작은 설'이라 하여 한 해를 마감하는 순간에 어른들에게 1년 동안의 송년 인사와 축원을 드리는 풍습이 있다. 이 해도 무사히 잘 보냈다는 의미이며,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도 하였다. 또한 집 안팎을 깨끗이 대청소하여 묵은해의 잡귀와 액을 물리치고 신성하게 새해를 맞이하였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여 잠을 자지 않았는데 이를 수세(守歲:해지킴)라고 하였다. 또한 위에서 말한대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그 해 남에게 진 모든 빚을 청산하였고, 만약 빚을 다 받지 못하였을 경우라도 음력 정월 보름까지는 빚 독촉을 하지 않는 풍습이 있었는데...심리적 인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찮가지 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