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한 민 국  

《대한민국의 성립》

소련군의 주둔과 함께 38도선 이북에서는 실질적으로 북한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하여 공산화의 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갔다. 이것은 김일성(金日成)이 처음으로 등장한 1945년 10월 평양군중대회에서 김일성이 제시한「민주기지론(民主基地論)」 에서 이미 제시되고 있었다.
이러한 소련측의 기정사실화 정책 앞에 좌우합작(左右合作)에 의한 정부가 남한에서 세워진다 하더라도 외국군이 철수하는 경우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당시 미군정(美軍政)과 국무성(國務省)에서는 깨닫지 못했다. 이러한 점에서 이승만(李承晩)의 단독정부수립 추진을 소련이 세운 북한 공산체제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정책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측에서 이승만 노선(路線)의 불가피성을 시인한 것은 중국에서의 국공합작(國共合作) 실패와 소련의 팽창주의 정책에 대해 보다 절실한 인식을 하게 되는 1946년말 또는 1947년 이후의 일이었다. 특히 북부「이란」에서의 소련의 합병기도가 그 한 예이다.
국내에서는 제2차 미 · 소 공동위원회가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협상의 대상문제에서 소련의 일변도적인 태도로 인하여 실패로 돌아가 미국은 1947년 8월 28일 영(英) · 중(中) · 소(蘇)에게 모스크바 협정을 조속히 실현할 방법을 강구하기 위하여 동 협정관계 4대국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의하였다. 영 · 중 양국은 이를 수락하였으나 소련은 9월 7일 이를 거부하였다.
미국은 모스크바 협정의 테두리 안에서 소련군과의 교섭을 통한 한국의 독립을 실현할 수 없게 되자 1947년 9월 17일 한국문제를 제2차 유엔총회에 상정하였다. 소련은 이러한 미국의 조치는 모스크바 협정에 위반되며 전후 처리문제의 하나인 한국문제를 유엔에 제소하는 것은 헌장 제107조의 정신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는 유엔 감시하에 남북한총선거를 실시하여 정부의 수립과 미 · 소 양군의 철수를 위한 감시 및 협의기구로서 수개국으로 구성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 파견한다는 내용의 미국제안을 가결하였다.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은 1948년 1월 8일 서울에 도착하여 남 · 북한 양지역의 미 · 소 양군과 접촉을 했으나 동(同) 위원단의 입북을 소련군 사령관이 거부했기 때문에 북한지역에서의 선거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엔소총회는 1948년 2월 16일 가능한 지역 내에서의 선거 실시의 권한을 유엔 한국임시위원단(韓國臨時委員團)에 부여하였는데, 이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나마 역사적인 총선거(總選擧)가 실시되었다. 1948년 5월 10일의 총선거에 의하여 의원이 선출되고 제헌국회(制憲國會)가 5월 30일에 소집되었다. 개회와 더불어 국회는 의장에 이승만을 선출하고 부의장에는 한독당(韓獨黨)을 탈당하여 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당선된 신익희(申翼熙)와 한민당(韓民黨)의 김동원(金東元)을 선출하였다. 헌법기초위원회도 한민당의 서상일(徐相日)을 위원장으로 하여 발족하였다. 한국민주당 의원이 다수를 점한 헌법기초위원회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내각책임제로서 정당의 실권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이승만의 반대로 대통령 중심제에 내각책임제를 혼합한 형태로 헌법을 제정하여 7월 17일 공포하였다.
7월 16일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7월 20일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李始營)이 당선되어 정부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독립을 내외에 선포하고 미군정으로부터 정권을 이양받게 되었다. 한편 동년 8월 5일 제40차 국회본회의에서는 「신생정부의 지도자, 민중을 계몽할 지도자 및 관공리(官公吏)를 채용할 때 부일협력자(附日協力者) 또는 민족반역자는 등용치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여 부일협력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발언이 있었다. 이에 제1공화국 헌법 제101조에 바탕을 둔 「1948년 8월 19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키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최고형이 사형으로 되어 있는 반민특위법은 단심제(單審制)이며 철저한 합의제로 독립운동에 경험이 있고 애국성과 학식 및 덕망을 고루 갖춘 특위원(特委員) · 특재관(特裁官) · 특검관(特檢官)으로 구성되었다. 10명의 특위는 국회에서 선출한 국회의원으로 이루어졌으나 정부와의 대립, 반민특위법 시행반대파의 방해공작 등으로 인하여 1948년 9월 22일 공포된 반민법의 공소시효는 1949년 8월 31일자로 마감되었다. 1949년 1월 15일부터 공소 만료일인 동년 8월 31일까지 검거된 반민자의 총건수는 682건이고 이중 특검부(特檢部)로 넘어간 것은 570건 실제 기소된 자는 260명이었으나 실제로 처벌된 반민자는 극소수이며 나머지는 거의가 병보석(病保釋) 등으로 풀려났다.
1948년 8월 16일부터는 군정권의 정권 이양업무가 순조로이 진행되어 8월 24일에는「대한민국 대통령과 주한미군 사령관 간에 체결된 과도기에 시행될 잠정적 군사안전에 관한 행정협정」이 성립되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이 결정되었다. 9월 11일에는「한미재산 및 행정에 관한 최초협정」이 조인되어 미군정의 재산과 부채가 정부에 이양되었다. 유엔총회는 1948년 12월 12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한국에서의 합법 정부임을 선언하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에 대치하여 유엔한국위원단을 새로이 창설하고 통일대의정치(統一代議政治)의 발전 및 외국군 철수 등을 실시하는데 있어서 한국정부와 협력하도록 결의하였다.
외군철수(外軍撤收), 외부 간섭없는 통일정부수립 등 선전적 구호로 미군을 철수시키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막으려는 책동을 해오던 소련군은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미 오래전에 실질적으로 세워놓은 북한의 공산체제를 1948년 9월 9일 정부의 옷을 입혀 내놓았다. 형식상 단독정부란 용어가 쓰이던 당시의 상황에서 보면 남한에서 단독정부가 먼저 세워지고 북한에서 뒤따른 것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선전에 주력한 북한에서의 소련군과 북한은 한국의 사태 진전을 보아가며 거기에 대응해서 단정수립의 책임을 남쪽에 돌리려 했다.
한동안 북한에서의 정치과정은 보지 않고 남한에서의 정치 즉 신탁통치 반대와 좌우합작 등의 혼란속에서 단정수립의 논리에 회의적이었던 남한의 지식인들에게는 단정수립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 확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 소련정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중국에서의 국공합작의 실패 등의 상황에서 본다면 단독정부의 수립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설혹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미군정에 의해 인정을 받지는 못했으나 대한민국은 실질적으로 그 법통(法統)과 정치적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으므로 한국사의 정통정부로서 인정되었고 또 유엔에 의한 적법한 절차도 또한 정당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나라.

위치 : 아시아 대륙 동쪽 끝
면적 : 9만 9373㎢(남한)
인구 : 4790만 4370명(2001)
인구밀도 : 475.7명/㎢(2001)
수도 : 서울
정체 : 민주공화제
공용어 : 한국어
통화 : 원
환율 : 1,280원 = 1달러(2001.9)
1인당 국민총생산 : 8,600달러(1998)
나라꽃 : 무궁화

면적 9만 9373㎢(남한), 인구 4790만 4370명(2001)이다. 인구밀도 475.7명/㎢(2001)이며 통칭 한국이라고도 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반도와 3,2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북(極北)은 북위 43° 1'(함경북도 온성군 유포진 북단), 극남(極南)은 북위 33° 6'(제주 남제주군 마라도 남단), 극동(極東)은 동경 131° 52'(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동단), 극서(極西)는 동경 124° 11'(평안북도 용천군 마안면 서단)이다.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중국의 만주와 러시아의 연해주에 접하고, 동쪽과 남쪽은 동해와 남해를 건너 일본에 면하며, 서쪽은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 본토에 면한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 전국이 행정구역상 처음으로 경기(京畿), 충청(忠淸), 경상(慶尙), 전라(全羅), 강원(江原), 황해(黃海), 함경(咸鏡), 평안(平安)의 8도(道)로 나뉜 이래, 1896년(고종 33)에는 함경, 평안, 충청, 전라, 경상도가 각각 남 ·북으로 나뉘어 8도가 13도로 개편되었다.

8·15광복 이후 서울이 경기에서 분리되어 특별시가 되었고,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이 경남, 경북, 경기, 전남, 충남에서 분리 ·승격, 직할시를 거쳐 광역시가 되었으며, 제주가 전남에서 분리, 도로 승격하였다. 2001년 현재 남한은 1특별시 6광역시 9도로 이루어져 있다.

 

1.개관  

수 도 : 서울 (Seoul)

인 구 : 약 45,482,291명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언 어 : 한글(Korean)

기 후 :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

면 적 : 98,190㎢

종 교 : 유교,불교,기독교

                                                        

 2. 지리

위치 : 아시아대륙의 북동부의 남쪽에 위치하며, 남북으로 1000킬로미터에 이르며, 북으로는 중국, 러시아와 접경을 이룸

-동 / 131°51' 42" E
-서 / 124°11' 00" E
-남 / 33° 06' 40" N
-북 / 43° 00' 39 " N

전 국토의 70%가 산악지역으로, 서해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동해로는 급격한 경사를 이룹니다. 최고 높은 백두산은 높이가 2,744미터입니다.

국토면적에 비해 많은 강이 있습니다. 북쪽 : 압록강, 두만강 등 남쪽 : 낙동강, 한강 국토의 삼면이 바다로 약 3,400여개의 섬들이 있으며 수산업과 해안산업이 발달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 북반구의 극동지역에 위치하며, 온대성기후에 속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겨울철에는 비교적 춥고, 여름철은 무더운 날씨를 보여 서유럽과 같은 중위도 국가의 계절변화와는 다른 기후형을 나타냅니다. 봄과 가을철에는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맑고 건조한 날이 특히 많습니다

한국의 기후는 사계절(봄,여름,가을,겨울)이 뚜렷하다. 덥고 습한 여름, 춥고 건조한 겨울, 상쾌하고 청명한 날의 봄과 가을은 비교적 짧다. 기온은 겨울엔 영하 15도까지 내려가고, 여름엔 영상 34도까지 올라간다.

봄 : 가끔 비가 내리고 중국으로 부터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의 기후불어온 바람으로 황사현상이 나타남.
4월중순엔 상쾌한 날씨가 계속되고 산과 들에 꽃이 핌.

여름 : 6,7,8월에 비가 많이 오는데, 그 중에 7월은 장마철로 많은 비를 내리는 달임.

가을 : 청명한 날씨와 푸른하늘로 아름다움.
산은 단풍으로 곱게 물들고 들에선 수확의 계절이며, 옛날부터 내려오는 민속명절들로 즐거운 계절임.

겨울 : 늦은 11월에 시작되어 3월초까지 계속됨.
시베리아로 부터 불어오는 고기압의 세력으로 추운날이 계속됨

                                                              

 3.사회

우리나라 총인구는 약 45,482,291명으로 연령구조와 인구 성장률, 성 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령 구조 :
    0-14세: 23% (남성 5,531,032; 여성 4,962,915)
  15-64세: 71% (남성 16,374,678; 여성 15,910,846)
 65세 이상: 6% (남성 1,014,649; 여성 1,688,171)

인구 성장률 :
    -1.02% (1996년 산정)
    -출생율: 16.24 출생/1,000 인구 (1996년 산정)
    -사망율: 5.66 사망/1,000 인구 (1996년 산정)

성 비율은 :
    -출생시: 1.14 남성/여성
    -15세 이하: 1.11 남성/여성
    -15-64세: 1.03 남성/여성
     -65세 이상: 0.6 남성/여성
총 연령: 1.02 남성/여성 (1996년 산정)

15세기 중엽에 세종과 그 주변의 학자들에 의해 창제된 훈민정음은  우리나라의 여러 학문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이며, 확고한 전통을 가진 우리  고유의 문자이다.
 훈민정음은 한자와는 전연 별개의
한글 독자적인 체계에서 발생한 문자로  놀라운 창조적 정신을 보여주며, 음운 연구의 커다란 성과로서 그  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음절의 삼분법, 즉 초성, 중성, 종성이다.
 이것은 중국음운학의 이분법의 전통을 비판 수정한 것으로 훈민정음이  그처럼 훌륭한 문자체계일 수 있는 것은 이 삼분법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천지 인의 구성으로 우주가 형성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한글  역시 그 우주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 고유의 전통의상인 한복입니다.
한복요즘은 개량한복이 큰 인기여서 대중들에게 한복이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내노라 하는 디자이너들 역시 한복의 우수성을 알고 한복의 특징들을 현대의상과 접목하는 크로스오버 의류가 등장하고 있습니다.